2024-03-29 01:53 (금)
문덕근 교육학박사, ‘나 그리고 그림자’
상태바
문덕근 교육학박사, ‘나 그리고 그림자’
  • 호남타임즈
  • 승인 2017.03.17 1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문덕근 교육학박사
어렸을 때 온 가족이 모인 큰 방 호롱불 아래에서 두 손을 이용해 강아지, 호랑이, 닭 등을 만들어 보았던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곤 했던 추억이 아른거린다. 그림자로 나타난 동물의 모습이 실제 모양과 어울리지 않은 이유가 손과 손가락의 모양에 있다는 진리를 깨닫고, 두 손과 손가락을 이리 저리 꼬기도 하며, 몸 전체를 이용하기 위해 방바닥을 나뒹굴었던 …….

잠자는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깜짝 놀란 경험들을 이야기하는TV 프로그램에서 어느 주부는 ‘참 기가 막히네. 이렇게 요상한 일이 또 있을까?’ 아빠와 꼭 닮은 아들의 잠자는 모습은 충격이었다고 말하였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유전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더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가끔은 동서양의 교육 속담에 담긴 내용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는 생각은 오래 전의 일이었다.

태양에 의해 생기는 달의 모습을 보고 꿈을 꾸듯이, 우리는 자녀들을 보고, 미래에 대한 부푼 꿈을 가지게 된다. 특히 현재 ‘내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은 내가 꿈꾸고 있는 바인가? 아이들의 꿈이 왜, 어떻게 이렇게 구체화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은 오간 데 없고, 오직 아이들의 부정적인 현재의 모습만을 확대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집값보다는 좋은 이웃을 얻는 데 더 높은 값을 지불했다는 ‘千萬買隣’이라는 선현들의 지혜는 오늘날의 우리 어른들에게 큰 울림이다. 여승진과 이웃이 되기 위해 집값이 백만금 밖에 안 되는 집을 천백만 금을 주고 산 송계아는 지금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큰 교육실천가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아이러니한 것은 안 닮았으면 하는 것은 더 닮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보고 절대로 따라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요즘 가족들은 나를 보고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고 놀린다. 귤이 변해 탱자가 되었다는 橘化爲枳나 孟母三遷之敎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의 성격과 습관 등이 특히 가까운 사람의 모습에 의해 변할 수 있다는 산 증거다.

‘애 앞에선 찬물도 못 마신다.’는 옛말은 무심코 하는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조차 ‘白紙’상태의 아이에겐 강한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서울 백제병원 신경정신과 양창순 과장은 ‘인간은 감각적이어서 말을 통해 개념적으로 형상화시켜야 하는 것보다 직접 보고 듣는 것에서 훨씬 많은 것을 배운다.’며 빈번한 접촉 대상인 부모와 교사야말로 그런 아이들의 표현 방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혹시 저 모습은 ‘나를 닮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늦잠을 자서 학교에 지각하는 아이들은 거의가 부모가 늦잠을 잔다는 것이다. 자야 할 시간에 자지 않으니까 아이들도 부모와 같이 일찍 자지 않아서 늦잠을 자고, 부모가 지각했던 모습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거의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말은 그 사람의 일상생활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현재 이 길을 가게 된 원인은 어떤 사람과의 만남에서 기인하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인생이란 자신의 길을 찾아 가는 여정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지금도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어.’라고 아이들을 닦달하곤 하지는 않은지? 왜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게 하고 있을까? 왜 신학기가 되면 좋은 책을 선정하고 구입해서 아이들이 읽도록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자신의 아이들이 위인들처럼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들 마음의 표현의 다름 아닐 것이다.

부모들은 위인을 사모하는 간절함으로 현인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로 학교에 보내지 않을까? 오늘도 우리 선생님들은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알찬 수확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교문을 들어설 것이다.

孔子가 한 ‘先之, 勞之, 無倦’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우리 삶의 지침이 아닐까? 앞장서서 모범(模範)을 보이고, 아이들에게 수고했다고 위로·격려해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자세가 그림자의 실체인 것이다. 그래서 ‘學’의 뜻풀이를 ‘모방하다.’로, 교사의 의미를 ‘보여주는 사람’으로 재정의 하고 강조도 해야 할 것이다.

왜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치는 내용의 불일치’에서 기인할 것은 아닐까? 배운 내용을 입에 달고 몸으로 익혀서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도록 나아가게 하는 것이 공부가 아닐까? 배운 것을 익히고,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움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강조 孔子의 ‘下學’에 관한 의미를 깊이 통찰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또한 당연하고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없다.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모습을 그대로 닮는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은가?

인간은 어떤 전제를 가지고 산다. 특히 아이들은 어른들의 기대, 사랑, 인정을 먹고 사는 것이다.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긍정적이고 일관된 어른들의 모습은 대를 잇게 되고, 대동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긍정적인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 어른들에게서만이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호남타임즈신문 2017년 3월 15일자 7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