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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칼럼]문덕근 편집인<교육학박사> “이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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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칼럼]문덕근 편집인<교육학박사> “이따가”
  • 호남타임즈
  • 승인 2017.07.2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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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라도 더 가르쳐야겠다고, 인성 위에 전문성 신장’이라는 신념으로, 더 나아가 ‘자신의 자리’를 뼈 속으로 깨닫고 실천하는 아끼는 후배 교장의 동분서주하는 모습에서 ‘저런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남은 내 삶의 여정의 이정표를 세우게 하는 좋은 기회로, 교육 정책은 현장과 밀접하게 현재 진행형이 되어야 함을 방증하는 자리였다.

교육의 심장인 후배 교사들이 화장실 갈 시간까지도 아끼며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현실과 더불어, 교사의 자리가 너무 어렵고 위태롭기까지 할 수 있다는 아픔의 시간도 몸으로 느꼈다. 아이들 지도에 버거워 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묻어나는 안타까움에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어수선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숙제가 더해졌다.

대학진학률 80%의 대한민국 그리고 취업률 OECD 꼴찌인 현실에서 생각의 힘을 키우는 수업을 외치는 구호만으로 창의적이고 인문 소양을 갖춘 조화로운 사람이 길러질 수 있겠는가? ‘요즘 아이들이 왜 이러지?’라고 비난하지만 그 책임은 기성세대가 만들고, 존속을 유지하고 강요하는 시스템에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철저한 되돌아봄은 있었는가?

국민 모두가 교육전문가인 대한민국에서, 한 번 대충 둘러보는 전시 행정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울부짖는 현장의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골짜기에는 도착도 못하는 현실은 아닌가? 교육 수장들의 취임 일성의 대부분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행정을 펼치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하고, 그 기대에 아직도 목을 매는 게 우리의 현실이 아닌지?

현장 중시의 정책을 펴겠다는 일성의 시작은 학생과 직접 대면하는 전문가들을 우대하는 말과 행동이 우선 되어야 하고, 그 정책도 그들의 말에 근거하여 수립되어야 한다. 지금도 현장에서 묵묵히 자신의 업무에 전념하고 있는 교원들을 힘 빠지게 하고,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을 확인하는 정책들이 펼쳐지고 있지는 않는지? 그것도 현장의 교원들에 의하여 점검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수장들의 생각은 과연 있기나 한지?

미래 교육은 창의적 인재 육성이라고 말하기 전에, 어떤 교육 환경에서 창의적인 사람이 나올 수 있는가를 교육 현장의 사실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현장 교육자들의 체험담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현장이 답’이라는 말은 듣고는 있는 것인가? 또한 특히 교육 행정가들의 패러다임은 현장의 개관적 팩트(fact)에서, 私를 버리는 즉‘己’를 버리고 ‘公’자를 찾는 자세부터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현장 교원들의 생각으로 교육 정책이 세워질 때,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긍심을 느낄 때, 현장 교원들의 말이 실천으로 이어질 때, 즉 그들의 말과 행동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되고, 약속이 되며, 미래가 되고, 우리 모두의 인생이 되어 질 때 우리가 교육에서 희망을 꿈 꿀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방법은 오직 하나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면 된다.”는 Dale Carnegie의 말은 정부 정책 수립자들을 위재 존재하는 지혜는 아닐까? ‘書自書 我自我’가 되는 교육이 현재까지도 반복되는 것을 현장만의 책임으로 치부하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모든 정책과 실천은 현장의 fact에서 시작하고 일선을 우대하는 자세로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아마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말과 글, 그리고 생각이지 않을까? 한 시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세상과 관계, 더 나아가 사람들과의 관계가 서먹해지고, 더 극으로 가면 관계가 끊어지고, 사회 관계망의 붕괴에 이를지도 모르는 상황을 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도 어른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를 들어보거나, 어른들의 마음을 생각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세대 간의 갈등과 和諧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요인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경험의 부재 때문에 큰 벽이 생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교과서의 내용의 일부는 농경사회의 모습을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른들은 보았거나 실제로 해 본 경험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교사들은 아이들처럼 경험이 공유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해라는 말 자체가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나를 세운다.’는 이 말을 행정가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내 사욕이 나오지 않도록 하고, 다른 모든 사람의 생각과 행동으로 나를 세우려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즉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물어보는 정책이야말로 ‘우리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후회가 조금은 더 적은 나라로 만들어가는 길은 아닐까요?

말에는 시(時)의 적절함과 그 자리의 짜임, 모인 사람의 면면, 그리고 모인 목적을 고려하는 지혜가 아니면 만나러 갈 때의 설레임이 돌아갈 때에는 회한으로 바뀔 수도 있다.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말을 나누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사람과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도 잃지 않고 또한 말도 잃지 않는다.” 는 공자의 지혜로 이 난국을 풀어봄은 어떨는지?

‘남편이 나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는 것은 본인의 입이 아닌 부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만약 현명한 부인이라면 남편의 말과 행동을 고쳐서 좋은 남편으로 소문나게 하는 일일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부정적으로 이름 지어지는 것에 대해 우리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나와 너를 편당 짓지 않고, 나를 더욱 넓히며, 나의 행복과 남의 불행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를 생각하지 않는 정책은 ‘이따가’의 교육인 것이다.’ 교육은 사람의 길을 찾는 것이며, 엄마의 사랑스런 목소리를 들으려고 되돌아가는 길이고, ‘누가 더 善한가?’를 경쟁하는 길이어야 할 것이다.

<목포타임즈신문 2017년 7월 27일자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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