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23:47 (목)
[이달의 독립운동가]2015년 1월, 황상규(黃尙奎) 선생 “육탄혈전으로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라”
상태바
[이달의 독립운동가]2015년 1월, 황상규(黃尙奎) 선생 “육탄혈전으로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라”
  • 정소희 기자
  • 승인 2015.01.23 0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황상규(黃尙奎) 선생
[호남타임즈=정소희기자]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항일 비밀결사 의열단’을 조직한 황상규(1890∼1931) 선생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황상규 선생은 1890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황문옥(黃文玉)과 허경순(許敬順)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7월 밀양의 노동야학에서 체조교사를 역임한 선생은 경술국치 후 일합사(一合社)를 결성하고 광복단(光復團)과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등 국내 비밀결사단체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했다.

선생은 일제의 탄압으로 조직이 와해되자, 중국 지린(吉林)으로 망명하여 1919년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 및 조선독립군정사(朝鮮獨立軍政司) 조직에 참여해 재무책임자로 활동하였고, 동년 2월에는 독립운동가 39명 중 한 명으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며,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알렸다.

또한 1919년 11월에 처조카인 김원봉과 함께 청년결사대 조직인 의열단(義烈團)을 창단하고, 국내의 일제식민통치기관 총공격을 계획하여 1919년 12월 중순 경 먼저 국내로 들어와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거사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1920년 6월 일경에 붙잡혀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1926년 4월, 옥고를 마친 후 선생은 경남 밀양의 지역사회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7년 12월에는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 밀양지회를 설립하고 지회장을 역임하였다. 1929년에는 신간회 중앙본부 서기장 겸 서무부장으로도 활동했다.

국내, 국외를 무대로 다양한 방략의 독립운동을 전개한 선생은 지병으로 1931년 9월 자택에서 서거했다.

정부는 황상규 선생의 빛나는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울러 독립기념관도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 별도의 전시코너를 마련하고, 의열단 결성장소 사진 등 관련자료 12점을 2015년 1월 한 달 동안 전시하고 있다.

<목포타임즈신문 제125호 2015년 1월 28일자 11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